- [셜리조안]The case of Missing he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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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 8. 7. 13:27
- Posted by SHJW비인
* ts에 오메가버스입니다. 백합물을 싫어하시는 분은 피해주시기 바랍니다.
조안은 더 이상 며칠이 흘렀는지 헤아릴 수 없었다. 분명 그건 조안에게 중요한 문제였다. 발현과 첫 히트 이후로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먹었던 억제제를, 그 며칠간 한 알도 먹지 못했다. 조안은 구출된 뒤에 다시 먹으면 될 거라고 자신을 다잡았다. 지금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생존 그 자체였다. 조안은 억류되어 있는 동안 최소량의 마실 물만 공급받았고, 식사는 전혀 하지 못했다. 그런 탓에 체력은 급격히 저하된 탓에 갇혀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조안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고 있었다. 죽은 다음에, 억제제는 전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줄곧 셜리를 따라다니던 조안은 범인에 대해서는 대강 알고 있었다. 물론 이제는 얼굴도 알고 있었지만, 현재로서 그건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근무 없는 주말 오전, 느지막하게 늦잠을 자고 일어나 늦은 아침을 먹던 조안에게 셜리는 읽던 신문을 내려놓고 어서 나가자고 재촉했다. 셜리가 무슨 기사를 읽고 플랫을 뛰쳐나가다시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조안은 셜리를 따라가기 위해 다급하게 자켓만 걸쳤고, 총을 차마 챙기고 나오지 못했던 그녀의 조급함과 준비 부족은 결국 그녀 자신이 피해자로 전락하는 위험으로 이어졌다.
찌는 듯한 더위에, 조안은 셔츠 단추를 하나 더 풀었다. 끈적거리는 피부에 달라붙는 옷감의 감촉이 짜증날 정도라 벗어버리고 싶었지만, 언제 그녀를 억류한 자들이 돌아올지 모르기 때문에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조안은 셜리가 자신을 구하러 올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시간이 흘러도 믿음은 퇴색하지 않았다. 살아서 버티기만 한다면 셜리가 자신을 구해줄 것이고, 그런 다음에 자신을 이런 처지로 만든 자들을 응징할 수 있을 것이다.
셜리가 뛰쳐나간 이유는 대략 반나절이 지나고 해가 건물 사이로 사라질 즈음에야 알 수 있었다. 아무 말 없이 셜리는 조안을 데리고 여기저기 끌고 다니며 홈리스 네트워크 일원에게 얼마 쥐어주며 정보를 캤고, 짧은 지시를 내렸다. 범죄와는 무관해 보이는 조용한 중산층 주택가를 걸으면서도 무슨 일인지 물어오는 조안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그건 전혀 그녀답지 않았다. 대부분의 경우, 그 정도의 진척이면 셜리는 자신이 어떤 사건을 맡은 건지, 용의자가 누구일 것이고, 그 수법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는지 조안이 이해할 수 있도록 짧게라도 설명해주곤 했다. 그렇지만 이번만큼은 조용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렇지만 조안은 굳이 그녀에게 대답할 것을 독촉하지 않았다. 그리고 해가 건물 너머로 사라질 즈음, 자신의 사건을 들쑤시고 다닌다는 것을 알게 된 레스트라드가 셜리에게 전화했고, 셜리가 무시한 탓에 대신 전화를 받은 조안은 그제야 사건의 내막을 알게 되었다.
셜리는 사라진 아버지의 유품을 찾아달라고 그들을 방문했던 의뢰인이 실종되었다가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기사를 읽었던 것이다. 의뢰 자체는 어렵지 않았기에 셜리는 의뢰인의 용모와 그의 설명만 듣고도 그 유품이 누구의 손에 있는지 밝혀냈고, 그대로 돌려보냈다. 그렇게 돌아간 날 의뢰인은 실종되었고, 그로부터 열흘이 지난 주말, 시신으로 발견된 기사가 신문에 게재된 것이었다.
단순한 강도 사건이 불운하게 살인 사건으로 발전했다는 경찰의 발표에 코웃음을 치며 셜리는 그들의 멍청함에 넌더리를 냈다. 멍청한 검시관이 사망추정시간과 사인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탓에 수사 방향은 엉뚱하게 흘러갔다. 셜리는 그가 실종된 뒤 최소한 3일은 살아 있었다고 말했는데, 부패가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결박되고 굶주린 흔적을 읽어낼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는지 홈리스 네트워크에 물어봤고, 의뢰인이 납치되었을 만한 곳을 답사해본 것이었다. 그리고 조안이 납치당한 건 일요일 새벽, 먼저 뛰어가 버린 셜리의 뒤를 따라가다 뒤쳐진 순간, 아주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조안은 벽에 기대어 가만히 눈을 감았다. 조급함은 그 때도 지금도 자신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딱딱한 벽의 냉기가 셔츠 너머로 전해졌다. 올 거야, 그녀는 영리하니 내가 어디 갇혀 있는지 결국 알아차릴 거고, 구하러 올 거야. 그 때까지 난 버티기만 하면 돼. 살아남기만 하면 되는 거야.
더위는 가실 줄 몰랐다. 조안은 목이 바짝 탔다. 이제는 허기도 느껴지지 않은지 오래 되었다. 갈증에 마른 침을 삼키지만 갈라질 것만 같은 목구멍이 아파왔다. 범인은 불쌍한 그 피해자를 3일은 살려두었으니, 어쩌면 조안이 지금까지 붙들려 있던 기간도 그쯤일 거라 생각했다. 창문이 없었기에 시간의 흐름을 가늠할 수 없었지만, 그보다 짧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사실 마지막으로 범인이 와서 물이라도 주고 갔던 때도 제법 오래 전 같았다. 조안은 시간에 관해서는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감은 눈이 열기와 수분 부족으로 뻑뻑하게 느껴졌다. 조금이라도 체력을 아껴야 하기에 조안은 몰려드는 수마에 저항하지 않았다.
*
고갈된 체력과 팽팽하게 날이 선 긴장으로 조안은 꿈과 현실을 오갔다. 숙면을 취할 수도 없었고, 깨어서도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플랫에서 셜리가 실험하는 것을 걱정스레 지켜보고 있다가도 그게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다시 차가운 바닥의 냉기가 엄습했다. 꺼질 줄 모르는 천장에 달린 조명을 지긋지긋한 시선으로 노려보다가 다시 고개를 꺾어 눈을 감았다. 조안은 어차피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없다면, 다시 그 꿈을 꾸고 싶었다. 아드레날린이 치솟는 스릴을 사랑하는 것만큼이나 조안은 셜리와 함께 하는 일상을 몹시 소중하게 여겼다. 때로 셜리는 학을 뗄 정도로 조안을 화나게 만들기도 했지만, 221B에서의 삶은 조안이 꿈꿀 수 있는 최대치의 행복이었다. 암담하지만 눈물도 흐르지 않았다. 그저 눈을 꽉 감을 뿐이었다.
*
더위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늘 켜져 있는 조명, 스트레스, 불안함과 함께, 조안을 괴롭히는 열기도 휴식을 취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조안은 천장 구석의 작은 환기구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노려보았다. 환기구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걸까. 갇혀 있는 처지에 에어컨디셔너가 사치일 수도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조명과 체온으로 데워진 열기는 어디로도 빠져나가지 못하고 작은 방안에 고여 있는 것만 같았다. 여전히 그녀를 가둔 일당은 나타나지 않고 있었기에 조안은 셔츠를 아예 벗는 것에 대해 다시 고민했다. 식어버린 땀이 피부에 끈적하게 남아 악취를 풍기고 있으리라. 조안은 자신의 체취를 감지할 수 없지만 며칠 동안 씻지도 못해 땀범벅이 된 자신의 상태를 능히 상상해볼 수 있었다. 다시 벽을 향한 채로 차가운 냉기에 몸을 붙이며 눈을 꽉 감고, 구출된 다음에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해 생각했다.
샤워. 그래, 제일 먼저 개운하게 씻어야지. 그리고 가볍게라도 맛있는 걸 먹겠어. 아마 자극적인 것을 먹었다간 병원에 갇힌 신세가 될 테니, 메뉴를 잘 골라야겠지. 차를 마셔야겠어. 나를 찾기까지 왜 이렇게 오래 걸렸는지 셜리를 놀리면서 말이야. 그럼 아마 그녀는 우물쭈물하며 되도 않는 사과 비슷한 걸 하려다가 사건에 대해 전부 말해주겠지. 난 맞장구를 치며 감탄하고, 그걸 블로그에 올릴 테고.
조안은 일상이, 셜리가 너무 그리웠다. 몸을 웅크린 채 다시 잠을, 꿈을 청했다. 그리고 그대로 잊혀진 채 죽음을 맞이할 거라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애써 무시했다. 희망을 잃어버리는 게 이런 처지의 자신에게 얼마나 악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기에, 조안은 조금이라도 더 버틸 수 있도록 좋은 꿈을 꿀 수 있기를, 셜리를 볼 수 있기를 기원했다.
*
가끔 그런 순간이 있었다. 미풍이 볼을 스치며 지나가버리듯 덧없이 사라지지만 분명 뒷골이 짜릿하게 당기고, 온 몸의 피가 빠져나간 듯 몸이 차갑게 식었다가, 다시 뜨겁게 달아오르는 순간, 잠시 숨 쉬는 것도 잊고 뱃속이 울렁거리는 어지럽고 아찔한 순간,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중력에 끌려가듯 셜리의 주변으로, 그리고 더욱 가까이 다가가면서도 전혀 인지하지 못하던 순간, 알아차리지 못한 사이에 접근해온 셜리의 인기척에 놀라면서도 그녀가 발산하는 체취에 그녀가 하는 말을 전혀 듣지 못하는 순간,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그 때마다 조안은 그 모든 신호를 무시했다. 가망 없는 관계에 시도해보는 건 용감한 조안 왓슨으로서는 해봄직한 일이었지만, 상대는 일과 결혼했다고 단언하며 넌지시 자신을 거절했던 적이 있는, 지금은 생활을 공유하는 플랫메이트였고, 조안의 가장 소중한 친구가 된 사람이었다. 조안은 그녀를 잃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이제 죽음을 맞이할 가능성을 전혀 무시할 수 없게 된 지금, 조안은 자신의 결정에 대해 겁쟁이의 멍청한 회피였을 뿐이라고 딱지를 붙였다. 언제나 그랬다. 셜리도,조안도 늘 죽음에서 겨우 한두 발 떨어진 곳에 있었다. 지금 자신이 이런 처지에 놓여 숨죽여 구출을 (또는 죽음을) 기다리고 있지만, 지금 같은 생활방식을 고수한다면 비슷한 일이 반복될 가능성은 분명히 존재했다. 그렇지만 조안은 멍청하게도 마치 영원히 살 수 있을 것처럼, 입을 다물고 감정을 꾹 누르고 있으면 영원히 셜리와 함께 생활할 수 있을 것처럼 자신을 속였다. 그 대가로 그녀는 어쩌면 단 한 번의 용기로 얻을 수 있었을 수많은 가능성들에 대해서는 결코 알 수 없게 될 것이다.
조안, 넌 지금 죽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야. 그만. 그만해.
그보다는 좀 더 희망적이고 건설적인 생각을 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만약 살아남는다면, 셜리에게 솔직하게 마음을 고백하기로 말이다. 그 결과에 대해서는 온전히 자신이 감수해야만 할 테지만, 조안은 되도록 환하게 웃을 셜리를 상상하려고 노력했다. 자신에게 필요한 건 목표와 희망, 그리고 셜리뿐이었다.
*
쿵.
멀리서 건물을 울리는 소리가 비몽사몽 중인 조안을 깨웠다. 건물 내부에서 들려오는 소리였기에, 조안은 그게 무슨 일일지 생각했다. 정확히는 생각해보려고 노력했다. 한참 뒤에야 조안은 범인들은 그렇게 큰 소리를 낸 적이 없다는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들은 언제나 불시에 조안이 갇힌 철문을 열어, 조안을 놀라게 만들곤 했다. 그렇다면 저 소리는 범인들이 아니야. 어쩌면, 드디어 그녀가 자신을 구하러 온 것일지도 몰라. 조안은 누워있는 상태로 그녀를 마주해서는 도저히 체면이 서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가까스로 앉은 자세를 취하는 것만으로도 남은 기력을 전부 써버린 느낌이었다.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늘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 건물이었기에, 조안은 웅성거리는 기류를 감지할 수 있었다. 셜리가 혼자 온 게 아니라는 것에 안도했다. 범인이 이 건물에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셜리의 명중률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그녀는 격투를 배웠다고 가볍게 흘리듯 말한 적이 있었지만, 아무리 뛰어난 솜씨라 해도, 조안은 셜리가 백업도 없이 단신으로 온 게 아니기만 바랬다. 둘 다 위험에 처하는 건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문 앞에서 발소리가 그쳤다. 조안은 이 모든 게 자신의 상상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랬다.
“조안? 거기 있어?”
이제껏 한 번도 흘리지 않았던 눈물이, 다급하고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차오르기 시작했다.
“셜리.”
갈라지는 작은 목소리에도 목이 화끈거렸다. 덜그럭, 철컥 소리에 뒤이어 끼이익, 문이 열렸고 밀어닥치는 시원한 공기에 그리운 체취가 실려 왔다. 흐려진 시야 때문에 조안은 눈물을 닦아내려고 고개를 숙였지만, 곧 그녀 앞으로 달려와 무릎 꿇은 셜리가 다시 그녀의 얼굴을 감싸 쥐고 고개를 들어올렸다. 빠르게 조안의 상황을 훑어본 셜리는 여전히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가 괜찮은지, 다친 곳은 없는지 묻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조안은 이해했다. 묻지 않아도, 조안이 대답하지 않아도, 셜리는 조안의 상태를 완전히 알 것이다. 며칠 만에 마주하게 된 그 시선에 조안은 진심으로 씩 웃고 싶었다. 그렇지만 셜리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이 그녀를 머뭇거리게 만들었다. 셜리의 코가 벌름거리자, 조안은 갑자기 자신에게서 지독한 냄새가 날 수도 있다는 것을 떠올렸고, 갑작스러운 수치심에 뒤로 물러나려고 했다. 그렇지만 셜리의 양손이 그녀의 어깨를 꽉 붙들었다. 셜리가 입을 벌렸지만, 목소리가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입을 다물고는 고개를 옆으로 틀었지만, 여전히 곁눈질로 조안을 보았다.
“조안. 억제제는...”
조안은 약하게 고개를 저었다. 왜 지금 그걸 묻는 거지? 셜리는 범인이 피해자를 굶긴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 범인이 억제제를 먹을 수 있게 한다고? 어차피 금방 죽일 상대에게 억제제를 먹일 이유도 없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명백한 사실을 묻는 이유가...
조안은 열린 문으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고 있는데도 여전히 자신은 덥다는 것을 감지했다. 땀이 배어 나오고, 숨이 점차 가빠졌다. 더 이상 피부에 끈적이며 감기는 셔츠를,답답하게 들러붙는 바지를 견딜 수가 없었다. 셜리의 손이 닿는 곳으로 열기가 더욱 뜨겁게 피어오르고, 그녀의 체취에 조안은 어지러워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때, 조안은 다리 사이가 축축하게 젖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히트 사이클이었다.
“그럴 리... 그럴 수 없어... 아직 2주는 남았...”
뜨거운 숨을 가쁘게 몰아쉬느라 말라버린 목이 더욱 아팠기에 문장을 온전히 끝낼 수 없었지만, 셜리는 그녀의 말을 이해했다. 아마 조안의 눈동자에 떠오른 공포도 읽어냈을 것이다. 조안은 첫 발현과 연이은 히트 이후로 꾸준히 억제제를 먹었기에 다시 그처럼 강렬한 히트를 경험하지 않았다. 억제제를 복용하면 마치 베타 여성의 생리와 비슷하게,히트 중에는 얼마간의 신체적 불쾌감만 경험할 뿐, 극도의 예민함과 미칠 것 같은 성욕에 내몰리지 않았다. 조안에게는 이미 오래전 일이라 거의 잊어버린 경험이었기에, 앞으로 다가올 상황이 더욱 공포스러웠다.
셜리는 갈등하고 있었다. 그녀는 알파였고, 본딩하지 않았기에 히트를 맞이한 조안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상황에 따라서는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조안을 위해서라면 자신은 되도록 빨리 자리를 떠야 했다. 아직도 이곳을 찾지 못하고 건물 안을 헤매고 있을 레스트라드에게 연락해서 그녀를 수용할 병원으로 이송할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알파는 그 옆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조안은 그녀의 친구였고, 도움이 필요한 오메가였다. 무력해진 오메가의 옆을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다시 조안을 두고 멀리 떨어져 있다는 생각만으로, 셜리는 저도 모르게 이를 드러냈다.
낮게 깔리며 공기를 진동하는 소리에 조안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알파의 소리에 조안 안에서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오메가가 깨어났다.
이제 열기는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조안은 생각할 것도 없이 셔츠의 단추를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풀기 시작했다. 증오스러운 옷을 한시라도 빨리 벗어버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런 조안을, 셜리는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배어난 땀으로 반짝거리는 피부는 오랫동안 씻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셜리에게는 입에 침이 고이게 하는 향을 풍겼다. 햇빛을 접하지 못한 속살은 그 자체로 투명하게 빛을 발하는 것만 같았다. 조안의 풍만한 가슴이, 그 아래 잘록한 허리가 차례로 드러났지만 그동안 셜리는 조안을 만류할 정신조차 차리지 못했다. 입안에 침이 고였고, 목젖이 위아래로 울렁거렸다.
드디어 셔츠가 바닥에 떨어졌다. 셜리의 시선이 잠시 그 셔츠의 궤적을 따르는 순간, 조안은 자신을 이끄는 유혹적인 체취의 근원으로 다가갔다. 언제나 조안의 시선을 뺏던 그 아름답게 뻗은 목에서, 오메가를 가르랑거리게 만드는 알파의 체취가 강하게 발산되고 있었다. 머리는 의무와 욕망의 전투에 갈팡질팡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육신은 착실히도 조안의 히트에 감응하고 있었다. 조안의 다리 사이를 젖어들게 만드는 그 체취를 따라 조안은 셜리의 귀 아래에 코를 묻었다. 가는 신음소리가 저도 모르게 코로 흘러 나왔다.목을 간지럽히는 조안의 열기와 울림에, 셜리는 등줄기를 타고 전율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몸에 딱 맞게 재단된 바지가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조안... 그만. 넌 지금... 네가 무슨...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어.”
“아니, 셜리.”
난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제대로 알고 있어. 조안은 빙그레 웃으며 체취를 만끽했다. 코를 부비면 부빌수록 더욱 더 진하게 발산되었다. 어쩌면 맛볼 수 있을지도 몰라. 조안은 혀를 내어, 작게 할짝였다. 약한 화학약품의 냄새와 짠 맛 너머로 이른 아침 숲에서 맡을 수 있는 축축하지만 싱그러운 공기와 이슬이 느껴졌다. 조안은 빙그레 웃으며 이번에는 더욱 길고 강하게, 목덜미를 핥아 올렸다. 혓바닥 아래로 펄쩍 뛰는 혈관이 느껴졌다. 혀끝에 엉기는 사향 냄새에 조안은 목을 가르랑거렸다. 어느 새 셜리의 허벅지에 올라간 손은 느리지만 암시적으로 위아래로 쓰다듬었고, 손바닥으로 그 접촉에 꿈틀거리는 근육의 움직임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조안의 입술이 목덜미에서 귓불로, 뺨으로 짧은 키스들을 이어갔다. 뜨거운 낙인처럼 열기를 남기는 키스에 셜리는 눈을 꽉 감은 채 발작적으로 조안의 팔목을 움켜쥐었다. 발밑이 사라진 듯한 감각에 뱃속이 철렁했다. 입안이 바싹 말랐다. 그렇지만 분명 그녀는 다가올 다음 키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걸 부정할 수 없었다.
“제발... 조안... 이래선 안 돼. 넌...”
저도 모르게 살짝 벌어진 입술 위로, 뜨거운 숨이 흩어졌다. 더듬더듬 힘겹게 나온 말들은 그 끝을 찾지 못했다. 달짝지근한 향이 콧속을 엄습함과 동시에, 가볍게 입술이 내려앉았다. 마주한 조안의 입술은 건조하지만 뜨거웠다. 그 감촉에 셜리의 심장이 빠르게 쿵쾅거리며 갈비뼈를 두들겼다. 조안의 입술이 맞닿은 채 벌어지자 셜리의 입술도 저항 없이 그대로 따라 벌어졌다. 조안은 그렇게 셜리의 입을 벌린 뒤 윗입술을 빨았다. 혀가 가볍게 부어오른 윗입술을 핥자 셜리는 저도 모르게 저도 혀를 내밀어 제 입술을 잘근거리는 조안의 입술을 핥았다. 혀와 혀가 닿는 찰나의 순간, 조안은 셜리의 허벅지를, 셜리는 조안의 손목을 움켜쥔 채 잠시 몸을 굳히고 바르르 떨었다.
쿵, 조안은 왜 등이 화끈거리며 아픈지 혼란스러웠지만, 이내 그 통증에 신경 쓸 수 없게 되었다. 조안의 양손을 머리 위로 붙든 채 그녀를 바닥에 쓰러뜨린 셜리는 이제 완연한 알파의 기세를 풍기며 조안의 벌어진 다리 사이에 자리 잡았다. 셜리는 곧장 조안의 입술을 벌리고 들어갔다. 지금까지 물도 마시지 못했던 게 조안이 아니라 셜리 자신인 것처럼, 그렇게 갈증 난 사람처럼 조안의 입술을, 그녀의 혀를 탐했다. 혀와 혀가 얽히고 비벼졌다. 입천장의 얇은 점막을 부비고 찌르자 조안의 목에서 숨이 턱 막히는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마치 복수하듯 조안이 셜리의 허리에 다리를 감고 하반신을 문지르자 이번에는 셜리의 목을 울리며 신음이 흘러나왔다.
“아! 셜리, 널 만지게 해줘. 제발, 난... 하아...”
셜리는 여전히 조안의 손목을 움켜쥔 채, 그녀의 목을 핥으며 부풀어 오른 알파 성기를 느린 리듬으로 문질렀다. 조안이 다리로 셜리의 허리를 감은 탓에, 조안의 갈라진 골 위,축축해진 바지로 기세를 키워가며 단단해진 성기가 감질나게 문질러졌다. 그게 안으로 들어온다면 어떤 느낌일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조안은 조급해졌다. 어서 바지를 벗고,그것을 만지고 핥고 제 안으로 넣을 수만 있다면...
“셜리, 제발 넣어줘. 박아줘.”
조안이 바란 건 셜리가 둘 다 바지를 마저 벗을 수 있게 해준 뒤, 제 안을 채워주는 것이었다. 조안의 말에 마치 얼음물이라도 맞은 듯, 하던 것을 멈추는 건, 조안이 바란 것도,예상하던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조안의 손목을 놓아주었다. 그렇지만 그와 거의 동시에 벌떡 일어났다. 바지 앞섶을 잔뜩 세운 채 그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여전히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어 자신을 바라보는 조안을 마주할 뿐이었다.
“미안, 미안해. 이래선 안 돼. 이대로라면 넌-”
“셜리! 조안은 괜찮은 건가?”
갑작스럽게 문 앞에 레스트라드가 나타났다. 그 뒤로 부산한 발소리가 복도를 시끄럽게 울렸다. 레스트라드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잠시 말문을 잃었다. 그렇지만 현장에서 닳고 닳은 능숙한 형사답게, 그는 손짓으로 부하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명령했다. 방안에서는 히트 중인 오메가의 페로몬이 진동하고 있었고, 조안은 가슴을 드러낸 채 할딱거리고 있었다. 셜리는 황망한 표정으로 레스트라드를 바라보았지만, 그가 방안으로 한 발 딛자, 곧 조안의 앞을 막아섰다. 그녀가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는 모습에, 레스트라드는 제 안의 알파가 응전하려는 충동을 느꼈지만, 곧 노련하게 그 충동을 억눌렀다.
“셜리. 그녀는 지금 안전하지 않아. 곧 구급요원들이 올 거야.”
달래는 듯 조용한 말투에 셜리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구급요원. 조안은 감금당한 동안 음식물을 섭취하지 못해 허약해진 상태에 히트까지 겪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히트 상태의 오메가들은 탈수에 취약했지만 조안은 그보다 더 위험한 상태였다. 곧 처치 받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셜리는 조안이 뿜어내는 페로몬으로 자꾸만 멈춰서는 두뇌를 간신히 작동시켰다.
“셜리... 제발... 아파... 흐읏. 널 만지게... 안아줘, 제발.”
등 뒤에서 흐느끼며 조안이 셜리의 코트를 움켜쥐었다. 제 몸을 일으켜 세울 힘조차 남지 않은 그녀를, 셜리는 조심스럽게 앉게 만든 뒤 꽉 끌어안았다. 뜨거운 체온이, 땀이 마르며 발산하는 향이 자꾸만 셜리를 어지럽게 만들었지만, 셜리는 그녀를 위해, 조안을 위해 참아야만 한다고 이를 악물고 되뇌었다. 조안의 양손이 코트 안으로 파고들었다. 등을 꽉 붙든 채, 조안은 셜리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그런 조안의 밀빛 머리카락에, 셜리는 코를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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